“왜 약을
빠뜨리셨어요?” 남아있는 약을 보며 아버지께 화를 냈다. 귀가 어두우신 것을 감안해도 분명 아들의 짜증이었다. 할 말을 잊은 아버지는 대답 대신
눈만 껌벅이셨다. 젊은 시절 불 같던 성품은 어느새 사라지고, 이제는 아들의 투정에도 화 내실 힘조차 잃으신 것이다. 그렇게 아들은 투덜거리며
간단한 설거지를 하고 음식을 챙기고 뒤돌아서 나온다. 높은 텔레비전 볼륨만이 울리는 작은 공간에서 아버지는 혼자서 그렇게 또 이 저녁을 보내실
것이다. 부부 중심의 소가족화와 노령화를 어떻게 한번 단단하게 묶어볼 수 있을까? 마음 무거운 아들은 묘수를 찾지
못한다.
백수(白壽)의 노모를 둔, 칠순을 넘긴 지도 5년째가 되는 할아버지는 오늘도 아픈 무릎에 걸음이 어렵다. 주변에서
관절수술을 권하지만 아들의 마음은 무겁다. “언제 일을 치를지 모르는데” 하며 노모를 걱정한다. 요양병원에 모신 지도 5년이 됐다. 내년이면
미수(米壽)가 되는 다른 할아버지는 6년째 혼자 생활하신다. 십여년 병으로 고생한 할머니가 돌아가시고 줄곧 그렇게 생활하신다. 걸음도 기억도
조금씩 흐트러지는 것을 당신도 느끼신다. 곧잘 “사는 것이 사는 게 아니다” 하시며 하루하루를 무겁게 견디신다. 팔순은 확실히 넘긴 또 다른
할아버지 역시 혼자 생활하신다. 이것이 쉽지 않다. 매일 달라지는 모습을 당신들은 어찌 받아들이실까? “잘 정리하고, 스스럼없이 받아들여야 될
텐데” 하며 걱정하신다.
주변에 흔한 노인들의 일상에 관한 이야기다. 급속한 고령화는 2010년 11%에서 2040년에는 32%를
넘길 것으로 전망된다. 경북은 현재 65세 이상 노인인구비율이 17%를 넘어서서 초고령사회를 눈앞에 두고 있다. 30%를 넘어선 농촌지역도 여러
곳이다. 사회의 건강성과 안정성을 높이기 위해서 노인을 위한 사회적 배려 체계를 잘 갖춰야 한다.
‘연탄 한 장’에서 안도현이
밝히는 인간과 연탄의 공통점을 체화하는 속에서 배려 시스템을 갖추는 데 정성을 다해야 한다. ‘나 아닌 그 누구에게 기꺼이 연탄 한 장이 되는
것’을 실천하신 노인의 삶이다. 온몸으로 사랑하며 뜨거운 열기로 우리를 만들고 오늘을 일구셨다. 재가 되어서는 ‘스스로를 산산이 으깨며, 그
누가 마음 놓고 걸어갈 그 길’을 만들었다. 노인의 머리는 그래서 하얗게 변한 것인지도 모르겠다. 내일 늙지 않을 수 없고, 시작부터 노인은
없다. 그래서 우리는 노인의 소외를 극복하는 묘수를 꼭 찾아야 한다.이광동 <상주귀농귀촌정보센터 운영위원>
-영남일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