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을 세계의 중심에 놓고 그린 지도를 본 적이 있다. 그 지도에서는 우리나라가 극동에 있는 찾기 힘든 나라가 아니었다. 우리의 위치와 미래에 대한 비전이 갑자기 달라짐을 느낄 수 있었다. 발상의 전환은 비단 지도에만 적용되는 것이 아니다.
최근 문제가 되었던 "노인 비하"도 동일한 시각에서 조명해 볼 수 있다. 노인을 세상의 중심에 놓으면 노인은 더 이상 있어도 없어도 좋은 존재가 아니다. 다른 사람들이 비(非)노인이 되어 버리므로 오히려 노인 아닌 세대가 있어도 없어도 좋을 존재가 될 수도 있다. 어떤 식으로 보는가에 따라 세상은 매우 달라진다.
우리나라는 이미 노령화 사회고, 10년 이내에 노령사회, 즉 만 65세 이상 노인이 전 인구의 14% 이상을 차지하는 나라가 될 것이라는 예측이다. 아이 낳기를 기피하면 더 빨라질 가능성도 있다.
노령사회의 문제점이 합리적으로 해결되지 않으면 결국 젊은이들의 부담이 늘어날 것이다. 그리고 그 젊은이들이 다시 부담스러운 노인이 되는 악순환이 되풀이 될 것이다. 따라서 노인은 뒷방에 밀어 놓고 큰일 한 것처럼 안도의 웃음을 웃을 수 있는 대상이 아니고 국가의 중심에 심각하게 모실 수밖에 없는 것이 현실이다. 선진국에서는 이미 오래 전부터 노령화와 노인에 대한 자료를 모아서 합리적인 정책을 세웠다. 정보화에 세계적인 수준을 자랑하는 우리도 이제 집중적으로 자료를 수집하고 객관적 근거를 가지고 노인 정책을 세워서 집행해야 한다.
이렇게 하지 않고 노령 사회에 대한 접근을 그동안 우리 사회가 유지하던 효(孝)라는 관점으로 단순화해서 각 가정에서 알아서 하라고 내버려 두면 시한폭탄을 만드는 것과 같다. 어차피 세태가 바뀌고 가치관이 달라졌으므로 자식들의 선택에 의존해서는 "패륜"을 확대 생산할 뿐이다. 부모 죽인 자식 이야기가 어디 신문에 한두번 등장했던가. 오히려 젊은이의 이해(利害)가 달린 관점에서 사회적 체계를 세우는 것이 현명하다. 인간은 어차피 자신에게 이롭지 않으면 움직이지 않는다. 노인을 잘 모시는 것이 자신이 노인이 되었을 때도 이롭다는 것을 사회가 세운 체계나 제도를 통해 경험하도록 해야 한다.
동시에 노인 인력을 활용해야 한다. 노인은 지혜롭다. 이는 인지과학적 연구를 통해서도 이미 밝혀진 사실이다. 노인의 지혜는 돈을 주고 살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젊은이들의 지식이 교과서라면, 노인의 지혜는 교과서를 잘 이해하는데 필수적인 참고서다. 건강관리만 하면 노인도 국가를 위해 헌신할 수 있다. 담배와 술을 즐기며 인생을 소모적으로 사는 웬만한 젊은이보다 더 건강한 노인도 많다.
심리적으로도 인간은 살아 있는 한 점점 더 성숙한다. 노인은 죽어가는 존재도 정체된 존재도 아닌, 젊은 성인기와 좀 다른 형태의 성인기를 살아가는 사람일 뿐이다. 지혜와 식견을 지닌 분들의 도움을 받는 것은 나라의 장래 그리고 지금은 젊지만 어차피 노인이 될 사람들의 미래를 위해 중요하다.
노인은 배척하고 제거할 대상이 아니다. 신형이 나왔다고 폐기할 수 있는 가전제품도 아니다. 노인을 이유 없이 부담스러워하고 심지어 미워한다면 앞으로 자신도 노인이 될 수밖에 없는 엄연한 사실을 무의식적으로 부정하는 행위일 뿐이다. 노인들을 이미 우리 앞에 닥친 노령사회의 주인공으로 솔직하게 인정하지 않는 한 노인과 관련해 산적한 그리고 늘어날 문제들을 현명하게 풀어 나가기는 불가능하다. 이제 비(非) 노인의 관점에서 노인을 볼 것이 아니라 노인의 관점에서 노인을 보아야만 하는 시대가 왔다. 이러한 자세는 우리 모두의 생존과 통합을 위해 필수적이다.